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다
송나라 시대 대학자였던 주자는 “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일도하사불성)이란 말을 남겼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영어권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런 말들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는 우리는 알게 된다. 힐러리(Edmund Percival Hillary) 경이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등정했고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히말라야의 8,000미터 이상 고봉 14좌를 모두 등정했다고 해서 너도나도 그런 시도를 하다가는 다치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에나 분명히 뛰어난 위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존경의 대상이지만 그들처럼 되려 하다가는 실망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위인들이 위인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과 같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의 필요성
사람들이 배우고 익힌 대로만 행동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범죄만 봐도 그렇다. 미국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는 사람들)가 아니라면 범죄가 나쁜 것이라는 점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전 세계가 범죄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우리나라도 흉악범죄가 1980년에 7259건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2만7482건으로 4배나 급증했고, 특히 흉악범죄의 절반가량을 점하는 성폭력 사건은 연평균 증가율이 6%에 달한다고 한다.
고등학교가 평준화가 된 요즘 학교 선생님들의 불만 중 하나는 수업 수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한다. 성적이 가장 좋은 집단부터 가장 낮은 집단까지 섞여 있다 보니 성적이 좋은 집단에 맞추면 낮은 집단에 속한 학생들이 의욕을 잃고, 반대로 하면 성적이 좋은 집단의 학생들이 흥미를 잃는다는 얘기다. 우리가 속한 사회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간다. 힐러리 경이나 메스너만큼 체력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체력이 남달리 약한 사람들도 있을 테고 대다수는 그 중간 어디에 있을 것이다. 정책은 대다수에게 기준을 맞춰야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본능을 이용하는 MINDSPACE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금융행동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두에게 더욱 중요해졌다. 개인들의 준비가 미흡한 경우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움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금융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미국의 탈러 교수와 선스타인 교수가 공저한 「넛지」는 이러한 현상을 적시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물론, 넛지의 저자들이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들은 아니다. 경영학의 한 분야인 마케팅이 이런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넛지는 이런 현상을 영리 기업 차원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책의 추진에 적용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넛지의 출판 이후에 영국에서는 수상 직속으로 “넛지 유닛”(Nudge Unit)을 설치해서 탈러 교수의 자문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선스타인 교수가 직접 정부에 참여해서 이러한 현상을 정책에 반영하려 노력하였다.
MINDSPACE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MINDSPACE가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 착안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 오게 하는 것도 그만큼 쉽다는 의미가 된다. MINDSPACE의 네 번째인 “기본대안”(Default)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기본대안으로 정해진 것이 있으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기본대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점에 착안한 것이다. 문제는 금융회사들이 원래의 기본대안이 아닌 것을 기본대안인 것처럼 슬그머니 소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에도 소비자들이 금융회사들이 제시한 다른 대안을 기본대안으로 오해하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선택하게 된다.
요즘 재미있는 TV 광고가 있다. 예쁘장한 후배가 직장 선배에게 커피를 사달라고 하자 다른 직원들도 우르르 커피를 사달라고 해서 직장 선배가 난감한 표정이 된다. 전문점 커피는 가격이 좀 비싸서 여러 잔을 체크카드로 계산하다가는 민망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체크카드에 소액 신용기능을 연결하라는 권유로 광고는 끝난다.
불경기에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이 생활에 쪼들릴 테니 소액 신용기능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체크카드에 대한 소액 신용기능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소액 신용기능에 대한 수수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수수료 자체가 비싼 은행도 있지만, 수수료가 싼 반면에 신용거래 건수에 따라 비용을 받는 은행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수수료가 비싸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당 수수료가 1,000원으로 정해지면, 1원이든 10원이든 신용거래가 한 번 있을 때마다 1,000원을 내야 한다.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자. 체크카드에 소액신용기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중 어느 쪽을 기본대안으로 하면 좋을까?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양자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할 것이고, 금융회사가 제시하는 것을 기본대안이라 여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정부가 체크카드에 소액신용기능을 제한하는 것을 기본대안으로 정했지만 미국 은행들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미국 금융소비자들이 정부가 정한 기본대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도와 달리 기본대안을 선택한 금융소비자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MINDSPACE를 이용한 정책이 그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금융회사들의 방해에 부딪치는 경우 처음 의도한 바와 정반대의 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매우 세심하게 설계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각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성공적인 금융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금융소비자가 자기 자신을 잘 판단해야 한다. 지난 4월 1일 공식적으로 설립된 영국의 새로운 금융감독기구(Financial Conduct Authority, FCA)가 사람들의 행동편향 열 가지를 제시했다. 자기가 이러한 행동편향 중에 몇 가지나 해당되는지 따져보자.
1.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가?
2. 미래에 상환이 어려울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 대출을 받는가?
3. 비싼 물건을 살 때 추가로 구입하는 물건이 비싼 물건에 비해서 싸게 느껴지는가?
4.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가?
5. 판매직원이 설명을 잘 하면 그 물건이 실제 가치보다 더 좋게 보이는가?
6. 판매직원이 마음에 들면 그 직원의 권유에 따르는가?
7. 실적이 좋을 주식을 골라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8. 몇 년 동안 좋은 투자실적을 올렸다고 미래에도 그럴 것으로 확신하는가?
9. 투자 포트폴리오 전체가 아니라 자산별로 투자의사결정을 하는가?
10. 투자자산을 신중하게 배분하지 않고 투자대상에 균등하게 배분해서 투자하는가?
만일 이상의 설문을 통해 자기에게 해당되는 행동편향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전통적인 방법인 ‘교육’을 통해 합리적 금융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대부분의 행동편향이 자기에게 해당된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MINDSPACE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고 MINDSPACE 내용을 전부 학습할 필요는 없다. MINDSPACE 저자들이 가장 먼저 할 행동으로 금융행위 ‘기록하기’를 추천했다. 우리 어머니들이 가계부를 적는 목적과 마찬가지다. 금융행위를 기록하다보면 자기의 수입과 지출을 알게 되고, 자기의 수입과 지출을 알게 되면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러다 보면 금융․투자 상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올바른 금융행동을 목표로 첫발 내딛기는 너무나 쉽다. 금융거래를 한두 번 기록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한두 번 기록해 보는 것이 아니고, 기록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처음에는 한두 번 기록해 보다가 차츰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시작하자. 첫발 내딛기를 쉽게 여기다가 두 번째 발걸음을 딛기가 어려워질 것이며 세 번째 발걸음은 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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