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소스는 요즘 말로 꽃미남이었다. 요즘 TV 연예물의 주인공을 뺨칠 정도로 세상에서 보기 드문 꽃미남이었지만 자기를 흠모한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부한 탓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미움을 받아 비참하게 죽는다. 네메시스는 나르시소스를 어떤 샘물로 유인했는데 그는 물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반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결국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1898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네케(Paul Näche)가 신화의 내용에 착안해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란 용어를 만들었는데 흔히, 자기애(自己愛)라고 해석한다. 나르시소스가 죽은 자리에서 핀 꽃이 수선화라고 하며, 수선화의 여러 가지 꽃말 중 ‘자기애’는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르시소스 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좋게 보이기를 원하고,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수영장에서 멋진 이성 앞을 지나갈 때는 자기도 모르게 처진 배에 힘을 주게 마련이며, 사랑에 빠진 아가씨들은 상대 남성 앞에서 새 모이만큼 먹기 마련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기에게 불리한 면은 감추고 유리한 면만 보이려 하거나, 좋은 평판은 가능한 유지하려 하고 나쁜 평판은 가능한 빨리 없애려고 하는 것이 모두 자기애의 발로다.
더 나아가 자기와 동질감을 느끼는 집단에 대해서도 자기애, 즉 긍정적 자아상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경기를 보고 난 후에 확인해 보면 객관적으로는 양 팀이 비슷하게 반칙을 범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팀의 반칙을 가벼운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국가대표 간의 A매치 축구경기를 생각해 보자. 2002년에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의 편파 판정 소문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 중에서 이에 동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에게는 세계 4강이라는 감격과 함께 안정환의 결승골이나 박지성의 터닝슛, 또는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펄쩍 뛰던 홍명보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일 때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클럽 중에서 맨유를 심정적으로 응원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역시 자기애의 확대인 셈이다. 스포츠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외국의 훌리건들은 이런 성향이 좀 지나친 사람들로 보면 된다.
또한, 긍정적 자아상 못지않게 부정적 자아상의 부정적 영향력도 상당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저학력 소비자들이 저학력을 불명예로 인정하는 경우에는 복잡한 문제들에 개입하려 하지 않고, 사교범위를 줄이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고정관념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에 앞서서 검사대상 학생들에게 그 검사가 지적능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미리 말했더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생들보다 성적이 두드러지게 저조했으나, 검사가 지적 능력과 무관하다고 알렸을 때는 성적이 엇비슷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자기애가 작동해서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본능적인 노력을 하게 되지만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자아상의 효과가 이처럼 강력하기에 금융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긍정적 자아상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높은 자기애 때문에 자기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거나 지나친 행운을 기대하게 되면, 올바른 금융 행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에 이라크 통화인 디나르에 투자하라는 재테크 권유 사건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제재로 디나르보다 달러가 선호되면서 디나르의 가치가 폭락했지만, 제재가 풀리고 정세가 안정되면 디나르 가치가 수백 배나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디나르의 환전이 불가능했고 화폐개혁이라도 된다면 이전 화폐는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이 매우 높아, 전문가들은 사기로도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자제했다. 흥미로운 점은 권유의 대상으로 노린 사람들이 주로 50~60대 무역업 종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나 외국 통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야 아예 이런 종류의 재테크 권유 대상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금융사기 피해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금융지식이 좀 많거나 그렇다고 자신한다는 연구보고가 적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디나르 사기 사례가 특이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질감을 느끼는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자기애의 발동 역시 올바른 금융 판단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자사주 투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기업에 투자할 때에 비해서 무척 관대하게 판단한다. 2001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실적이 하위 20%에 속한 기업의 경우에도 근로자 저축의 10%가 자사주에 투자되었다고 한다. 물론, 과거 10년 간 실적이 상위 20%에 속한 기업의 경우 근로자 저축 중 자사주 투자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아서 40%나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자아상의 긍정성이 미흡하거나 부정적인 경우에는 올바른 금융행동을 고민할 의욕조차 잃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마도 금융소외계층 중 다수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MINDSPACE 저자들은 각자의 재무건전성을 자주 확인하도록 하거나, 현재 보유한 금융상품이 자기에게 적합한 것인지를 파악하게 하면 금융소외계층 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금융소비자들의 자아상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자아상이 판단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본능에 따른 행동이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들이 의식적으로 제고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책당국의 적극적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소외계층의 금융 이용을 높이려면 여타 정책과 함께 자기애를 높여주는 조치가 베풀어져야 한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던 간에 대상 집단의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아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비로소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여성으로 성공한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여왕처럼 생각하라. 여왕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는 그저 위대함으로 향하는 징검다리일 뿐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 정책 효과의 차이가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반면에, 긍정적 자아상이 지나친 사람들에게는 자기 확신을 자제하도록 꾸준히 인도하는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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