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3,000p 시대가 다시 열리면서 이전에 비해 줄었습니다만, '주식투자는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은 아직도 사람들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식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하지요. 인터넷상에 유머 밈 중에는 "주식투자로 1억을 만드는 방법"으로 "주식에 2억을 투자해서 반토막 나면 된다"라는 씁쓸한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식투자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자리한 것일까요? 그 역사를 복기해 보다 보면 패가망신하지 않는 주식투자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1962년 증권파동 : 첫 주식투자 패가망신 사건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미도 선물투기로 지역유지들이 거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 이야기보다는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역사에 증권투자로 인해 패가망신 역사가 기록된 사례는 1962년 증권파동일 것입니다.
당시 증권거래소는 서울 명동에 있었습니다. 상장 주식은 겨우 12종목 뿐이었지요. 이 중 대증주(증권거래소), 연증주(증권금융), 한전주(한국전력) 등이 전체 거래량에 93%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급격히 증가한 통화량과 부동자금이 맞물리면서 1962년 증권파동이 발생합니다.
특별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책동전(세력 끼리 서로 주가 대결하는 양상)이 발생하였고 대증주의 주가는 순식간에 120배까지 끌어올려졌다 합니다. 1962년 초봄부터 5월 피크까지 단 몇 개월 만에 말이지요. 이렇게 주가가 폭등하니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주식시장으로 뛰어들었고 주식투자 하면 대박 난다는 소식에 명동 증권시장엔 돈이 넘쳐났습니다. 소 판 돈, 달러 시장자금, 고리대금 자금 등이 증시로 달려들었고 당시 외상 주문까지 등장하며 주가는 끝없이 상승할 기세였지요.
하지만 5월 책동전이 종국에 이르며 5월 증권폭락! 즉 증권파동을 만들면서 그 당시 정부(?)는 증시 파탄과 중소투자자의 파산을 막기 위해 긴급자금을 의결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5,300명의 개인투자자가 파산했다 하기도 하고 수만 명이 파산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 후 10년 넘게 한국 증권시장은 주식시장으로서의 구실을 못하였지요.
우리나라 증시 역사에 큰 오명으로 남은 1962년 증권파동은 수천~수만 명의 개인투자자를 파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폭등하는 주가만 바라보고 외상거래(지금으로 치자면 빚투)까지 끌어왔으니 그 경제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1990년 1차 깡통계좌 정리 사태 : 깡통계좌 라는 단어가 일반명사화 되다.
1980년대는 화려한 증시 랠리가 있었습니다. 1985년부터 1989년 초까지 종합주가지수가 6~7배 상승하였으니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에 엄청난 강세장이 펼쳐졌습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초강세로 기울면서 원화 약세 속에 한국 수출에 모멘텀 발생하였고 70년대 중후반과 80년 초에 비하여 매우 낮아진 저유가, 저금리가 엮이면서 3저 시대 호황 그리고 86년 서울 아시안게임 88년 서울 올림픽 속에 소위 트로이카 주라 불리던 은행, 무역, 건설업종의 질주 속에 주가는 당연한 듯 계속 상승하였습니다.
주가지수가 6~7배 상승하였으니 개별 종목 단위에서는 상상 이상에 상승률이 부지기수로 발생하였고 그러다 보니 당시 투자자들은 당연한 듯 신용융자를 사용하였습니다. 심지어 신용융자를 안 쓰는 투자자들을 못난이 취급하였을 정도이니 그 당시 신용융자 사용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 해 볼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1989년 중반부터 하락한 주가는 90년 초 주가지수 30% 수준의 하락을 만들면서 시장에서 "깡통계좌"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80년대에는 신용융자 계좌가 단기 주가 하락으로 증거금이 부족해지더라도 조금 버티면 다시 상승하였었다 보니 관행적으로 깡통계좌를 고객 관리 차원에서 묵인하였습니다. 85년부터 89년 초까지 4년여 강세장이 지속되었다보니 타성처럼 쌓인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89년부터 증시가 1년 반 조정장이 지속되고 조정폭도 주가지수 기준 -20~-30%에 이르니 깡통 계좌는 급격하게 증가하기에 이릅니다. 계속 깡통계좌가 누적되는 상황 속에 자칫 금융시스템에 큰 문제가 될 수 있기에 1990년 10월 10일 당시 금융 당국은 전격적으로 담보유지비율 100% 미만의 깡통계좌를 일괄 반대 매매 하기에 이릅니다. (마치 군사작전처럼 전격적으로….)
당시 정리 대상 계좌 수는 1만 3천여 계좌에 금액은 3천억으로 추정되었는데 35년 전인 상황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가지수는 500p까지 폭락하였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서울에서는 한 집 건너 한 집씩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보았고, 한 골목에 한집은 주식투자로 인한 빚더미에 파산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88년 이후 국민주 열풍도 있었기 때문에 전 국민이 주식투자를 알던 시기였던지라, 실질적으로 "주식투자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깡통 계좌는 깔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1992년까지 계속 깡통계좌 정리는 이어지면서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 IMF사태 그리고 2000년 IT버블 붕괴 : 이제는 사반세기 전 충격
90년대 후반과 2000년 초반도 주식시장에서는 격동의 시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97~98년 찾아온 IMF사태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지요. 경제, 사회, 가정 모두에 악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도 대폭락 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94년에 1,145p에 있었던 주가지수가 1998년 277p까지 1/4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니 개별 종목에서는 상장폐지와 파산은 IMF사태 속에 셀 수 없이 연이어졌고 당시 투자자들은 심각한 투자 손실을 겪게 됩니다.
다만, 그 당시 개인투자자의 충격은 2000년 IT버블 붕괴 충격이 워낙 컸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그만큼 2000년 IT버블 붕괴는 주식투자로 인한 전 국민적인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IMF 직후 한국증시는 단숨에 주가지수 1,000p까지 상승합니다. 단 1년 만에 주가지수 277p에서 1,000까지 4배 상승한 것입니다. 당시 명예퇴직 분위기 속에 퇴직금을 받고 퇴사한 중장년분들 중 상당수가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1년 만에 주가지수가 4배 뛰었으니, 분위기는 증시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였지요.
그리고 99년 증시 분위기는 하반기로 들어가면서 코스닥 랠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새롬기술을 대장으로 코스닥 버블이 폭발하니 기술주들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집중되었지요. 그리고 1999년 바이코리아 열풍 속에 1차 펀드 붐도 불면서 전 국민적인 주식투자, 증권투자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당시엔 "펀드"라는 용어를 모르면 구세대 사람 취급받을 정도였답니다.
그랬던 분위기가 2000년 IT버블이 붕괴하면서 화려한 증시는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그 하락장이 일장춘몽으로 끝난 수준이 아니라 버블 붕괴 속에 심각한 투자 손실을 경험하게 되지요.
코스닥지수가 2000년에 1/5토막이 나는 등 1년 만에 IMF사태급의 상황이 증시에서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워낙 전국민적인 주식투자/펀드 투자 열풍이 있었다보니 전국 가정마다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말았고 주식투자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은 이전 1990년에 이어 또다시 깊이 각인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2001~2002년 반등장이 있었지만, 카드를 쉽게 발급하던 당시 분위기 속에 카드 빚으로 미수풀베팅하던 개인투자자들은 손실만 누적되다가 2000년 초반 카드대란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 1980년대 이후 주식시장 패가망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역사 과정 ]
■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직전 랠리 : 대다수 투자자 기억에 깊이 남은 사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글로벌 증시 강세 속에 한국증시는 500p에서 2,000p까지 4배 상승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상승이었지요. 시간이 흐르다 보니 IMF 당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가계들은 살아나는 경제 분위기 속에 돈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수년 전 2000년 IT버블 붕괴를 겪고 IMF 당시 증시 폭락을 경험하였기에 주식시장에서 오히려 상승장 초기 오히려 발을 빼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2003년 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키워가던 적립식펀드를 중심으로 한 공모 펀드들의 수익률이 높아지고 있다보니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 쪽으로 자금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온기가 지속되던 증시는 2005년 폭등장을 만들면서 불꽃을 일으켰고 2차 펀드 붐 조짐을 만들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수익률을 쌓아가는 공모 펀드 그리고 차이나펀드의 성과는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증시로 유입시켰으며 급기야 2007년 개인투자자가 가장 늦게 주식시장 전면에 공격적인 매수세를 만들며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투자에 상처를 입었던 투자자들은 공모 펀드에 가입하면서 2007년에는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 지점에 긴 줄을 서는 장사진이 심심치 않게 연출되었습니다.
그 화려한 랠리 속에 2006~7년부터 미수거래에 제약을 가하고 미수거래보다 상환기간이 긴 신용융자 제도에 문을 열면서 신용융자 자금이 2007년부터 개인투자자의 자금과 함께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강세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차이나) 에 투자하던 펀드들은 반토막 수준을 넘어 2000년 코스닥 폭락 장 충격을 경험하였고, 직접투자를 하던 개인투자자 중에 빚내 투자했던 상당수는 2008년에 심각한 손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당시 명동에서 증권사 프로젝트를 하던 저는 우연히 명동 모처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보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과학수사대가 왔었고 당시 뉴스에…. 주식투자 관련하여 ㅠㅠ)
■ 과거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 최소한 빚투는 자제하자.
그나마 2010년대 이후 과거 경험과 함께 개인투자자들이 스마트 해지고, 2020년대 동학개미 운동 과정에서 그 경험이 신규 개인투자자에게도 전해지면서 예전처럼 대책 없이 묻지마 투자하는 사례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처럼 단순히 주가가 급등했다는 이유로 묻지마 투자하기보다는 적어도 계산기 몇 번은 두들겨 보는 것이 현재 개인투자자입니다.
다만, 과거 1962년, 1980년대 후반, 1999년, 2007년 개인투자자들처럼 빚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종종 감지되고 있어 염려스러운 마음이 항상 마음 한켠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종종 있습니다.
"금리도 낮은데 빚투 주식투자에 당연히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불과 작년까지 이어진 약세장을 복기해 보아도, 조금 길게는 3년 전 2022년 하락장을 떠올려 보면 -10% 수준의 주가지수 하락만으로도 마진콜과 강제청산이 발생하여 깡통계좌에 이른 개인투자자들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개인투자자분들 스마트 해 지신게 맞습니다. 하지만 빚투의 무서움을 너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주식투자로 인해 어렵게 살았던 가정들, 사반세기 전 닷컴버블 붕괴 속에 집을 팔아야 했던 가정들 등 과거 선례 속의 중요한 교훈은 타산지석처럼 무의식에 각인해야 하겠습니다.
2025년 7월 23일 수요일
lovefund이성수 [ 미르앤리투자자문 대표 / CIIA / 가치투자 처음공부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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