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9월 통화정책에서 제로 수준의 연방기금 금리를 동결했지만 신용시장은 찬바람을 내고 있다. 회사채 발행 금리가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선진국의 장기물 국채 발행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부양책이 지속되고 있지만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심리는 오히려 고조되고 있기 때문인데, 미국부터 중국까지 각국 중앙은행의 부양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독일은 9월 하순까지 총 6차례에 걸쳐 2046년 만기 국채 발행에 나섰으나 사실상 실패했다. 투자 수요가 목표했던 발행액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영국도 마찬가지다. 30년물 국채 발행의 응찰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미국은 9월 초 30년물 국채 발행을 실시했으나 130억 달러의 총액 가운데 외국인 응찰이 7억5200만 달러에 그쳤다. 외국인 투자 수요는 2010년 3월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이른바 프론티어 마켓이 미국의 금리인상 불발을 기회로 외화 표시 국채 발행에 잰걸음을 하고 있지만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앙은행의 ‘비둘기파’ 정책 기조와 무관하게 금융시장 여건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9월 파키스탄이 10억 달러를 목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외화 표시 채권 발행을 실시했지만 실제로는 5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알바니아와 이라크, 가나 등이 투자은행(IB)과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채권 발행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망은 흐리다. 지난해 가나가 발행한 채권 수익률이 7.71%에서 10.13%까지 뛰는 등 발행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다.
회사채 시장도 한파를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9월 하순 투자 등급인 Baa 회사채 평균 수익률이 5.4%를 웃돌았다. 이는 소위 ‘테이퍼 발작(연준의 자산 매입 축소 언급에 따른 금융시장의 혼란)’이 고조됐던 2013년 말 이후 최고치에 해당한다.
중국의 경착륙 리스크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데 따라 기업의 투자 자금 수요도 얼어붙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3분기 장기저리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은행권에 공급한 자금이 155억 유로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분기 740억 유로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무부와 연준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설비 가동률이 지난해 11월 79%로 정점을 찍은 뒤 최근 9개월 사이 8개월에 걸쳐 하락했다. 설비 가동률이 통상 80%를 넘어설 때 기업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살아난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판단이다. 본격적인 투자 증가에 힘입은 경제 성장 회복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할 때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 선진국부터 신흥국까지 신용시장을 필두로 이미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미국 금융위기 직전 주식시장이 상승 열기를 토했을 때 신용시장이 먼저 이상 기류를 형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볍게 여기기 힘든 부분이다.
투자자들 사이에 미국 연준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마켓 풋’에 발목을 잡혔다는 의견이 번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부양책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던 이른바 ‘그린스펀 풋’과 반대로 이번에는 금융시장의 패닉이 통화완화 정책을 부추기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실물경제다. 브라질 경제의 하강은 중국의 파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제조업 및 원자재 업계의 경기 바로미터로 통하는 캐터필러의 수익성 악화 역시 글로벌 경제의 밑바닥 경기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캐터필러는 2018년까지 전체 직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 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지자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와 이 때문에 기존의 부양책이 확대, 장기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동시에 설득력을 얻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ECB의 월 600억 유로 자산 매입이 그리스 부채위기에 따른 충격과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일정 부분 방어한 것이 사실이지만, 고용과 생산성 등 구조적인 문제에 정책 효과가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소위 아베노믹스 역시 사실상 실패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미국은 2008년 12월 이후 장기간의 제로금리 시행에도 글로벌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홀로 ‘번영의 오아시스’로 남을 수 없다는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경고가 현실화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네버엔딩 QE(양적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노르웨이의 9월 24일 깜짝 금리인하를 필두로 원자재 수출국이 같은 행보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이미 한계를 드러낸 통화완화 정책이 장기화된다고 해서 구조적인 경기 하강을 막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신용시장의 경고음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경기 한파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
글. 황숙혜 뉴욕 특파원(higrace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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