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직장생활을 하다 퇴직하면 뭉칫돈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업들은 직원들이 퇴사할 때 ‘직전 3개월치 평균임금×근속연수’ 방식으로 퇴직금을 계산했다. 퇴직금 누진제가 적용되는 기업이라면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 일정률(예를 들면 1.5나 1.8 정도)을 곱해 더 많이 지급했다. 근로자들은 중간정산 후 목돈을 받아 집 평수를 늘리거나 자녀 교육비로 쓰기도 했다
2005년 시작된 퇴직연금은 퇴직금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제도다. 퇴직급여가 외부 금융회사의 수탁고에 들어가 있으니 회사가 갑자기 부도나도 근로자들이 퇴직급여를 떼일 걱정이 없다.
목돈 대신 연금 방식으로 수령할 수 있는 점도 퇴직연금 제도의 장점이다. 여생을 보내는 동안 안정적인 제2의 소득원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계약 내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이다. DB형은 퇴직 후 받을 급여액이 사실상 미리 확정되는 방식이다. 수익이 나면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가져가고, 손실을 보더라도 회사가 전액 떠안는 구조다. 근로자에겐 임금 상승률만이 관건이다. 특히 퇴직 직전의 임금이 전체 퇴직급여를 좌우한다고 보면 된다.
DC형은 정반대다. 퇴직금 적립금에 대한 운용권을 근로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형태다. 즉 근로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운용 결과에 따라 퇴직급여의 크기가 달라진다. 임금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근로자나 이직이 빈번한 업종의 근로자, 금융지식이 풍부해 직접 투자 행위를 하면서 임금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자신이 있다면 DC형에 가입할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과거 성장기 때처럼 연평균 5%가 넘는 임금 상승률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DC형 제도가 근로자들에게 불리하지만은 않다.
IRP형은 근로자가 중도에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는 퇴직금을 적립하는 전용 계좌다. IRP 계좌에서 자신의 퇴직급여 전체를 일시금으로 찾거나 평생 연금으로 탈 수 있다.
원칙적으로 퇴직연금의 급여권(나중에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은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하지만 법정 사유에 해당하면 적립금의 50% 한도로 담보를 제공할 수 있다. 담보대출 또는 중도인출 사유는 깐깐하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본인 또는 가족(따로 거주하는 부모 포함)의 6개월 이상 장기 요양, 천재지변 등이다. 올해부터는 학자금과 긴급 생계비가 필요할 때도 담보대출 및 중도인출을 허용한다.
DC형 퇴직연금이나 IRP에 가입했다면 퇴직연금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직접 짜야 한다. 퇴직연금 사업자나 상품을 선택할 때의 핵심은 과거 성과다. 수년간 괜찮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금융회사나 상품이 이 같은 기조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금융상품은 각 금융권마다 대동소이하지만 조금씩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생명보험사는 각 금융업권 중에서 유일하게 ‘종신형(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수령하는 방식)’ 수령 방식을 갖고 있다. 증권사들은 적극투자형 상품을 상대적으로 폭넓게 구비하고 있다. 전국 지점망을 갖춘 은행권은 안정적인 운용 관리에 강점이 있다.
DC형과 IRP 가입자들이 주기적으로 수익률을 점검해야 하는 건 필수다. 금융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수익률을 확인하거나 매달(또는 분기마다) 전송되는 수익률 보고서를 확인해야 한다. 펀드 등 특정 상품의 수익률이 지나치게 떨어졌다면 안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자주 포트폴리오를 건드리는 건 권하지 않는다. 한동안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하다가도 금세 반등하는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 새 상품에 가입할 때마다 별도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의 적립액이 아주 적지만 않다면 가급적 연금 방식으로 수령하는 게 좋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선 은퇴자들이 대부분 연금 형태로 퇴직금을 수령한 지 오래다. 특히 10년 이상 연금 형태로 퇴직급여를 수령하면 세금(연금소득세 3.3~5.5%)을 적게 낼 수 있다. 종신형 등 사망할 때까지 연금으로 받는다고 약정을 맺으면 세금을 더 낮출 수도 있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매년 회사에서 받는 경영 성과급을 자신의 계좌에 추가로 적립해 6~38%인 근로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근소세를 내지 않는 만큼 4대 보험(건강보험은 제외) 납부대상 소득액에서도 빠진다. 잠시 힘들더라도, 또 여러 유혹이 생기더라도 참고 퇴직연금에 묻어두면 그만큼의 세제 혜택과 더불어 노후에 더 달콤한 과실로 돌아올 것이다.
글. 조재길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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