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펀드 투자]
실속 있는 성장이
진정한 글로벌 금융제국의 원동력
• 기사회생한 ‘금융 거인’ 씨티그룹
세계 최대 금융그룹 가운데 하나인 씨티그룹이 2015년 3월 벼랑 끝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씨티는 극심한 경기 침체와 금융 혼란 속에서도 금융기관이 생존할 수 있느냐를 가리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실시하는 스트레스 테스트(재무 건전성 조사)를 통과, 마침내 본격적인 재기의 길을 걷게 됐다.
씨티그룹은 1998년 씨티은행(Citibank)과 미국 금융재벌인 트래블러스 그룹(Traveler's Group) 간의 합병으로 탄생한 거대 금융사다. 당시 두 회사 합병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합병으로 미국 역사에 기록됐을 정도다.
씨티그룹의 주요 사업은 개인금융, 글로벌 자산경영, 신용카드, 기업금융 업무 등이다. 우리에게는 씨티은행(Citibank)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씨티가 걸어온 길은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사에도 중요한 족적으로 남아있다.
우선 씨티그룹은 1913년 미국 뉴욕에서 연방준비은행이 탄생할 당시 첫 번째 회원사로 참여했다. 전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미 연준의 창립멤버인 셈이다.
이듬해인 1914년에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미국 은행 역사상 최초로 해외 지사를 개설했다.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간 미국 금융자본의 세계진출도 씨티그룹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밖에도 씨티그룹은 마스터카드의 조상격인 에브리씽카드를 만든 주인공이고, 종종 미국 중앙은행으로 오해받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농장투자로 흥하고 주택투자로 망하다
19세기 초 20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출발한 뉴욕의 작은 은행이던 씨티가 세계적인 금융사로 도약하게 된 계기는 농장투자였다.
씨티은행은 1850년대 중반부터 쿠바의 설탕 농장과 같은 플랜테이션 사업에 진출해 큰 이익을 얻었다. 씨티그룹의 또 다른 전신인 트래블러스 그룹은 보험이나 자산경영 업무에 집중해 성장해왔다.
이후 100년 이상 승승장구하던 씨티그룹이 생존의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서브프라임모기지론(subprime mortgage loan) 사태 때문이었다.
2007년 미국에서는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가 일어났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불리는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은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담보 대출을 말한다.
씨티그룹은 당시 회사가 공중분해될 정도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나 이듬해 11월 미국 정부의 대규모 구제 금융 지원에 힘입어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2009년 씨티그룹은 250억 달러의 정부 긴급지원금을 보통주로 전환함으로써 미국 정부가 씨티그룹의 지분 36%를 소유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국가소유가 된 것이다.
이후 씨티그룹은 추가로 210억 달러 규모의 보통주와 자산을 매각하면서 미국 정부의 지분을 크게 줄였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지분 매각으로 기록된 이 일을 통해 씨티그룹은 다시 민간금융회사로 돌아왔다.
• 세계재패를 꿈꾼 ‘걸리버’, 노무라
증권회사에서 출발한 일본 노무라는 1980년 일본에서 버블 경제가 한창일 당시 ‘세계 최대 금융사’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로 확장 일변도를 걸었다. 1987년 기준 노무라의 자산규모는 37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씨티은행과 메릴린치를 합친 것보다도 1000억 달러 이상 많은 액수였다. 유럽채권 발행시장에서는 1위였고, 영국, 호주, 스위스, 싱가포르 등 전 세계 상업은행들을 먹어치우듯 인수해 나갔다.
당시 노무라가 글로벌 확장에 나선 배경은 단연 엔고(高) 현상이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가 이뤄지면서 엔화 가치가 2배로 뛰자 일본은 해외주식과 채권, 부동산 쇼핑에 나섰고, 그 행렬의 맨 앞에는 늘 노무라가 있었다.
노무라는 1925년 오사카에서 설립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중개기업이다. 계열사로 노무라 홀딩스와 노무라증권이 있는데, 주력계열사는 일본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노무라증권이다.
일본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핵심 기업으로 활약하고 있어 증권업계에서는 ‘걸리버’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무리한 글로벌화, 신뢰도 타격
급격한 확장과 세계진출로 외형은 날로 커졌지만 노무라의 성장은 실속이 없었다. 1987년 노무라 미국법인은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로 수익성이 형편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글로벌 금융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미국에 발을 내디뎠지만 실제로는 일본인의 주식과 채권투자 물량에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앙은 90년대에 닥쳤다. 1990년 1~9월 일본 닛케이지수가 46% 급락하자 노무라의 사상누각은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다. 게다가 이 와중에 투자자 이탈을 막기 위해 큰손들에게만 손실을 보전해준 사실이 들통 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때문에 노무라의 글로벌화를 주도하며 ‘증권황제’로 불리던 다부치 세쓰야 회장이 물러나야 했다.
노무라는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회사다. 노무라는 1997년 한국의 IMF외환위기 직전 “한국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경고했다.
노무라의 보고서 발표가 있은 지 얼마 후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를 두고 지금도 “노무라의 보고서가 한국 IMF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난과 “한국의 외환위기를 정확히 예견했다”는 찬사가 엇갈리고 있다.
글. 정일환 기자 (imthetop@gmail.com)
카카오가 제공하는 증권정보는 단순히 정보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오류 및 지연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제공된 정보이용에 따르는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으며, 카카오는 이용자의 투자결과에 따른 법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Copyright (c) Kakao Corp. All
rights reserved.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사 또는 글쓴이에 있으며 카카오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