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펀드 투자]
‘만약’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믿을 수 있는 거래로 승부
• 신도 부러워할 영향력, 모건스탠리
모건스탠리는 20세기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회사로 꼽힌다. 모건스탠리의 이름으로 내놓는 투자의견이나 자문 등 각종 금융&경제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의 한마디에 주가그래프의 향방이 바뀌거나 국가경제가 움찔하는 현상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다.
모건스탠리가 처음 세워진 것은 1935년이다. 원래 모건스탠리는 모건 가문 금융기업의 뿌리인 JP모건체이스에서 투자은행 역할을 맡고 있던 한 부문이었다. 1933년 예금을 받는 여수신 은행과 투자를 주력으로 하는 투자은행을 겸업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모건스탠리는 1935년 전문 투자은행으로 새로 출발했다.
이후 모건스탠리는 JP모건과 함께 ‘모건 제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1970년대 모건스탠리의 광고 카피는 “신(God)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스탠리에 의뢰할 것입니다”였다.
‘만일을 대비하라’ 분명한 투자 철학
모건스탠리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원인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나오고 있지만, 최근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석은 ‘만약에 대한 준비’다.
모건스탠리는 투자에 나서기 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와 변수를 검토하고 ‘만에 하나’까지 대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투자자들이 ‘설마’라고 치부하는 0.01%의 가능성까지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하는 방식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월가를 마비상태로 빠트렸던 9.11테러가 꼽힌다. 지난 2001년 9.11테러로 붕괴된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에는 모건스탠리가 입주해 있었는데, 이들은 본사건물이 통째로 사라졌는데도 이튿날 곧바로 업무를 재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모건스탠리가 마치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듯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비상상황을 가정하고 준비를 해뒀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 임직원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대피훈련을 정기적으로 받아왔고, 이 경우 WTC 인근에 미리 마련해둔 대체 사업장으로 이동할 것을 숙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각종 자료는 IT백업센터에 실시간으로 저장해두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덕분에 직원들은 사고가 나자마자 미리 알았다는 듯 대체 사업장으로 이동했고, 백업센터의 자료를 사용해 하루 만에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일본계로 주인 바뀐 세계금융의 거인
1997년 모건스탠리는 소매금융의 강자였던 딘위터디스커버(Dean Witter Discover)와 합병했다. 두 회사의 합병을 두고 미국 언론은 ‘두 거인의 결합’, ‘두뇌(모건스탠리)와 근육(딘 위터)의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새 합병 기업의 이름은 모건스탠리딘위터였다. 2001년 모건스탠리딘위터는 회사 이름에서 딘위터를 빼고 다시 원래의 모건스탠리로 돌아왔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2007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부터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영위기에 봉착했지만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 앞으로 90억 달러분의 우선주 투자를 발행하는 등 빠른 대응으로 고비를 넘겼다. 다만 이 일로 인해 지금은 모건스탠리의 최대 주주가 지분의 21%를 소유한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으로 바뀌어 있다.
• 무너진 신뢰의 상징, 메릴린치
메릴린치는 엄격히 말하자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회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큰 손실을 입으면서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인수돼 더 이상 독립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 1만5000여명의 재정고문을 두고 있고, 고객 자산 규모가 2조20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세계 금융시장의 절대 강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메릴린치는 1914년 찰스 E. 메릴(Charles E Merrill)이 뉴욕 월스트리트에 투자회사 찰스E.메릴앤드컴퍼니(Charles E. Merill&Co)를 세우면서 출발했다. 이후 그의 친구인 에드먼드 C. 린치(Edmund C. Lynch)가 여기에 합류하면서 회사이름을 메릴린치로 바꿨다. 투자관리,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업무에 진출했는데, 특히 증권사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성장했다.
성공의 열쇠는 ‘신뢰와 성실’
메릴린치가 성공을 거둔 밑거름은 ‘신뢰와 성실’이라는 다소 전통적인 가치였다. 메릴린치의 투자 철학은 “조사하라. 그리고 투자하라”로 요약된다. 투자에 나서기 앞서 반드시 그리고 충분히 정보를 확보하라는 의미다.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거래도 중요한 투자원칙이었다.
메릴린치는 미국 증권시장에서 모든 증권사가 수수료 수입을 더 받기위해 노력할 때 오히려 ‘수수료 인하’를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조금이라도 고객에게 더 많은 이득을 줘야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메릴린치는 1920~1940년대 미국 증권사들이 .매매수수료를 더 받기위해 종목 교환을 마구잡이로 추천한 것을 비꼬면서 “브로커의 역할은 특정 종목의 매수를 권유하기에 앞서, 특정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의 투자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예컨대 배당금 수입만으로 살아가는 은퇴한 고객들에게는 절대로 투기성 종목은 권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주식투자자에게 기업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솔직하게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침몰’
정직한 투자로 고객의 신뢰를 얻은 메릴린치는 1969년 투자신탁에 진출, 이 분야에서도 미국 최대의 판매업자가 되는 등 증권중개업, 상품 선물거래, 기업·자치제·연방정부의 증권 딜러, 투자금융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뒤 2008년 9월 18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되면서 화려한 전통의 빛이 바랜 상태다.
글. 정일환 기자 (imthetop@gmail.com)
카카오가 제공하는 증권정보는 단순히 정보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오류 및 지연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제공된 정보이용에 따르는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으며, 카카오는 이용자의 투자결과에 따른 법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Copyright (c) Kakao Corp. All
rights reserved.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사 또는 글쓴이에 있으며 카카오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