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펀드 투자]
유럽은 무너져도 독일의 성은 견고하다
자체 개혁 역량, 제조업 경쟁력 세계 최고
대외변수에 강한 탄탄한 경제 시스템
최근 독일 남부 최대도시 뮌헨의 주택가에는 아기를 안고 다니는 젊은 부부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한다. 아침이면 아파트 위ㆍ아래층 할 것 없이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뮌헨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1만5951명으로 2000년에 비해 31%나 증가했다. 선진국의 베이비붐은 경제적 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독일 경제의 호황이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젊은층이 경제적 부담으로 출산을 포기하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의 별명은 ‘유럽의 병자’였다. 성장률은 1%대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15%에 육박했다. 강점이던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에 밀리기 시작하니 수출이 지지부진했다. 수년 간 재정적자에 시달렸지만 벌려놓은 각종 복지정책은 수습할 길이 없었다. 엄청난 통일비용까지 발목을 잡았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보다 더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10년 후 독일은 확 달라졌고, 지금은 무너질듯한 유럽 경제를 사실상 혼자서 지탱하고 있다. 지난해 초 그리스, 스페인과 함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확실히 독일은 저력이 있는 나라였다. 2014년 4분기부터 내수시장이 회복되고 수출이 다시 늘었다. 2월 실업률은 6.5%로 더 낮아졌다. 1991년6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유로존 전체가 독일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독일의 미래가 밝은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튼튼한 기초 체력이다. 독일은 수출과 내수가 고르게 성장하고, 낮은 실업률 덕에 적절한 소득 분배가 이뤄지는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돈을 번 가계가 지갑을 열고, 기업에 그 돈이 다시 흘러 들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잘 설계돼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기초 체력은 그냥 얻어낸 게 아니다. 약 10년 간 뼈를 깎는 자체 개혁이 있었다. 대다수 독일 국민이 그리스가 EU의 긴축 정책이나 구조개혁을 거절한 채 국채 삭감과 융자 확대만을 요구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다.
독일 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져가던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Agenda 2010’이라는 충격적인 해법을 내놨다. 말이 좋아 어젠다지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지 정리한 것이었다. 그는 먼저 독일의 자랑이라던 사회보장제도에 손을 댔다.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32개월에서 12~18개월로 줄이고, 연금수령액을 축소하는 동시에 수령 연령은 60세에서 63세로 올렸다. 노동 유연화를 위해 해고방지법을 개혁하고, 비정규직 고용과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했다.
세계 어딜 가도 긴축을 반길 국민은 없다. 반발은 극심했고 슈뢰더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그는 정권을 기민당에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바통을 이어 받은 메르켈 총리는 그의 개혁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정당은 달라도 ‘지금은 인내할 때’라는 인식을 공유해서다. 서서히 독일 국민도 개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노동자는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기업을 살리려 스스로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였다. 정부와 기업 역시 단시간 근무제, 노동시간 계좌제 등을 도입해 노동자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인내의 열매는 달았고, 치료가 끝난 병자는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두 번째 이유는 제조업 경쟁력이다. 독일이 탁월한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세계 최고 2수준의 제조업이 있다. 독일의 경제 규모는 한국보다 3배가량 크지만 제조업ㆍ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는 거의 판박이다. 겉은 비슷하나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르다. 일부 대기업이 전체 경제를 떠안고 있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주축이다. 중소기업은 독일 전체 기업 매출액의 36.9%와 고용의 79.5%를 책임진다.
우리는 삼성전자가 무너지면 정말 큰일이지만 독일은 BMW나 지멘스 하나 없어도 경제가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의미다. 특히 소재ㆍ부품 분야에서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독보적인 세계 1위다. 각국 수출 중 비교 우위 품목 수를 비교하면 숫자는 중국이 가장 많지만 돈이 되는 하이엔드 제품은 독일이 가장 많다. 완제품에 비해 경로의존성이 큰 부품·소재는 한번 선택하면 거래처를 바꾸기 쉽지 않다. 품질을 인정받으면 경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앞서 미국과 중국의 혁신 역량을 짚었는데 G2의 혁신이 창업과 새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독일의 혁신은 따라올 수 없는 기술, 가장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더 매력적인 건 독일이 기초 체력이나 제조업 경쟁력을 하루아침에 쌓아 올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안에 게르만 민족 특유의 뚝심과 장인정신이 녹아 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고성과 같다.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독일 경제는 대외변수에 크게 요동치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글.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jang.wonseok@joi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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