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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人] 곽태선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이사
추천 0 | 조회 609 | 번호 3209 | 2015.03.18 10:51 펀드슈퍼마켓 (simamoto1***)

[펀드人]



이민 1.5세대의 한국에서 살아남기

곽태선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이사



이민 1.5세대인 곽태선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의 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다. 할 말이 많겠다 싶은데 그는 목소리에 힘주는 대목 없이 소탈하게 술술 풀어냈다. 가끔 발음이 꼬이는 한국말과 ‘아~ 엄’하는 미국식 추임새를 제외하면 그가 중학생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로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챌 구석은 많지 않았다.


곽태선 대표는 미국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땄다. 로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더 매력적인 직업이 보였다. 1988년 베어링증권 조사부에 입사, 금융업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찍은 것이다. 1991년에 자문사인 ‘에셋코리아’를 공동 창업했고 결국 이 회사는 베어링자산운용 한국법인의 뿌리가 되었다.


한국생활 초기엔 실수도 잦았다. 미국처럼 운전석 옆 좌석을 상석으로 알고 귀한 고객에게 앉기를 권했다가 오해를 사기도 했다. 느긋하게 대화를 즐기는 식사가 아닌 10분안에 해치우기 바쁜 식사 문화 역시 아직도 적응이 덜 된 한국문화 중 하나라고 털어놓는다.


직원이 큰 자산이라는 곽 대표. “직원들이 오너 마인드로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가 보람되고 행복하다”는 곽 대표의 직원 사랑은 남달라 보였다. 함께 동고동락하는 직원 하나하나가 회사의 차기, 차차기 대표로 성장하리란 믿음 또한 확고하다.


그는 말한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동안 거래한 고객 중에서 단 한 분의 고객도 거래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자랑”이라고. 또한 “작게 시작했지만 늘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자랑중의 하나라고 꼽았다. 은퇴 이후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곽 대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돕거나 통일시대를 대비해 북한 재개발 사업 등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2015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올해 시장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곽태선: “미국을 중심으로 시장이 많이 살아났는데 한국은 여전히 잠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의 많은 기업은 개혁 없이 중국의 성장과 엔고 시대의 혜택으로 고통 없이 지냈지요. 엔저 시대에 접어들어 기업 이익이 줄어들었는데 이러한 상황에도 이 정도의 주가를 유지한다는 것은 기본이 탄탄하다고 여겨집니다. 2015년 하반기부터 내재된 에너지를 발판삼아 많이 상승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미국이 좋아 보이고 달러는 강하고 유가는 약해서 미국과 호주 영국과 전 세계가 전쟁하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나 브라질에 비하면 굉장히 잘하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환율이나 금리 부분에서 잘 관리하는 것 같습니다. 빨리 움직인 투자자들은 벌써 그동안 미국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제 이머징마켓으로 돌아올 것을 대비해 중국과 인도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한국도 기회가 올 것으로 전망합니다. 우리나라가 5년마다 좋은 시장이 왔고, 올해는 정부가 기업에 투자나 배당을 유도할 예정이라 좋아지리라 전망합니다.”


베어링자산운용의 전신인 세이에셋코리아와 에셋코리아 시절부터 대표직을 맡아 올해로 17년째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장수 CEO인데요.


곽태선: “항상 새롭게 배웠던 시간으로 한 가지를 오랫동안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91년도에 공동으로 조그마한 회사를 창업했는데요. 적자여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때도 있었어요.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문사로 시작하여 일임 자문사로 성장했고, 다시 자산운용사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97년 당시 에셋코리아 수탁고가 1000억원 정도였는데 IMF를 겪으니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상황이었죠. 회사는 적자였어요. 이후 기관투자자의 신뢰를 얻어 2002년에 수탁고 1조원을 돌파하고 2005년에는 5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지금은 수탁고가 8조원을 넘어서 하루에 3000억원이 들어온 날도 1000억원이 나가는 날도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2013년에 베어링이 세이에셋코리아를 인수하고 나서는 해외시장으로 시야를 더욱 넓혔기 때문에 차이나 시장을 권해야 하나 프론티어 시장을 권해야 하나 늘 공부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 이민 가서, 하버드 로스쿨 법학 박사를 취득한 후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는데요. 한국에서 생활이, 금융업이 힘들어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을 때는 없었는지요?


곽태선: “힘들 때도 많았죠. 원래 전공분야도 아니고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금융업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재는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변호사보다는 자산운용업에 종사한다면 한국사회에 기여할 바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자본시장이 개방되고 국제화되는 현장에서 일하며 잘할 때까지 해보자 한 것이 오늘까지 왔습니다. 미국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사회 깊은 곳까지 경험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환상은 없거든요.


변호사나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 일을 시작해야 하고, 문제가 터지기 전에 예방한다는 것이죠. 주로 기업변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문제 예방차원의 자문이 주 업무였어요. 자산운용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관이나 개인의 자금 운용 계획을 세우고, 리스크를 예방함으로써 좋은 수익률을 얻는 것이니까요. 자산운용업이 변수도 많고 속도도 빠르며 역동적이죠.”


88년 베어링 증권에 입사하며 금융인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요. 한국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것, 금융인으로 자리 잡을 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요?


곽태선: “미국에서 17년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으니까 힘든 게 많았지요. 말하는 것도 서툴고, 비즈니스 편지를 쓰는 것도 어눌하고, 한자로 된 신문 읽기도 쉽지 않았어요.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할 끈도 없었지요.

하지만, 결과로 보면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학연과 지연으로 포장된 만남이 아니라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무작정 찾아가서 도전하며 투자해달라고 호소했지요. CEO를 만나려면 비서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았지요. 나중에 친해졌을 때 그분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처음에 너 진짜 이상했어. 한국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고요.

한국에서는 ‘민원’이 많잖아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사업을 일궜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부탁받아 처리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네요.”


한국 금융업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는데요. 한국의 투자문화가 많이 변하지 않았나요?


곽태선: “한국은 자산운용업도 빨리 배우고 그만큼 실수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88년부터 시작된 주식 열풍으로 주식은 도박이라 생각하고 채권이나 확정금리가 나오는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했죠. 이제 채권시가평가제가 도입되고 펀드를 통해 주식에 투자합니다. 또한, 해외투자로 시야를 넓히고 있습니다. 투자문화가 많이 성숙했지만, 해외시장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시장 중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2%이고, 그 외 시장이 98%이니까요.”


최근 배당주펀드가 인기인데요. 국내최초 고배당펀드를 2000년에 출시했고 2004년에는 고배당펀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5년 전, 고금리 시대에 고배당펀드를 출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곽태선: “99년에 IMF를 지나면서 금리가 꽤 높았어요. 우량한 채권도 10% 정도 수익이 나서 채권형 펀드를 만들려고 승인을 요청 중이었는데 그 사이 채권 금리가 7% 대로 떨어진 거예요. 주가도 내렸고요. 이럴 바에야 배당을 안정적으로 받고 추가로 주가가 오를만한 고배당주에 투자하는 상품을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지요. 그 당시만 해도 배당수익률보다 금리가 높았고,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별로 없었지요. 지금은 배당주가 훨씬 더 주목을 받는 시대입니다.”


베어링자산운용의 투자 철학은 무엇입니까? 베어링자산운용이 가장 잘하는 투자는 무엇입니까?


곽태선: “베어링자산운용은 250년 역사를 지닌 자산운용사로 세이에셋코리아를 인수하면서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외국계 회사이지만 한국에서도 27년 넘게 뿌리를 내린 회사이지요. 저희는 원칙을 지키는 회사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대우채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저희 회사는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입니다.


2003~4년에는 고배당펀드에 자금이 몰려 잠정판매중단(소프트 클로징)을 하기도 했습니다. 펀드 규모가 갑자기 커지면서 투자 유니버스가 없었기에 고객 보호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로 아마 국내에서는 최초의 잠정판매중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펀드 운용 1년 만에 수익률을 지수 성장률보다 두 배 높게 기록하여 고액투자가인 PP 쪽의 가입률이 높았습니다. 당시에는 ‘세이 고배당펀드’로 투자자들에게 이름을 알렸지요. 이외에도 채권투자나 일반 주식형 펀드도 잘하여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또, 기관투자자들과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투자자 교육도 진행하고 있으며, IFA 제도가 도입된다면 IFA와 공동으로 교육을 진행할 계획도 있습니다.”





대표님의 개인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하고 계십니까? 이번 달에 종자돈 3000만원이 생긴다면 대표님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요?


곽태선: “자산 중 부동산에 40% 금융자산이 60%인데, 금융자산의 50%는 주식형 펀드에, 나머지 50%는 예금과 확정금리 또는 채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주식형 펀드는 주로 저희 회사 펀드에 투자했고, 아직 저희 회사에서 출시하지 못한 이머징마켓이나 인도같은 경우에는 타사 펀드를 통해 투자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입한 저희 회사 펀드는 절반은 해외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에, 절반은 국내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해외시장에 투자할 때, 대개 환위험을 헤지 하지 않습니다. 환헤지해서 이익이 나는 경우는 한국 시장이 매우 좋아진 상황인데 그런 경우는 주식형 펀드에 투자한 자산에서 수익이 날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줄어들겠죠.


투자한 모든 자산이 항상 잘 된다는 것은 포트폴리오가 잘못 짜인 경우입니다. 포트폴리오라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어떤 상황에서도 한쪽은 좋고 한쪽은 나빠서 위험이 분산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중국시장과 인도시장에 5:5로 분산투자했는데 중국시장이 좋아져 6:4의 비율이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럴 때 중국 시장 쪽 투자금으로 이익 실현을 하고 인도시장에 투자하여 5:5 비율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포트폴리오 개념입니다.”


대표로서, 자산운용업의 특징 상 트레스 상황에 자주 맞닥뜨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시는지요?


곽태선: “생각해보니 스트레스 상황도 잘 짜여진 포트폴리오 같아요. 포트폴리오내 다양한 자산군이 늘 동일한 성과를 낼 수 없듯이 스트레스 상황의 요인도 그때 그때 달라지니까요. 대표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거래처가 끊어졌을 때인데, 고객은 떠나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오히려 직원 단합은 더 잘됩니다. 시장이 좋을 때는 포트폴리오 성과도 좋고 회사도 성장해나가 좋지만, 직원들에게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직원 관리에 따른 스트레스가 생기더라고요. 스트레스 역시 포트폴리오가 아닐까 합니다. 어딘가 어두우면 어딘가 햇살이 비치는 것이죠. 전 세계시장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주식이 폭락하면 채권이 올라갈 것이고 달러가 강하다고 하지만 영원히 높을 수는 없을 것이고 이머징마켓도 좋을 때가 올 것입니다.”



글. 김성숙 기자(goong171@naver.com)

사진. 전민규 기자(jeonm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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