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아베노믹스의 업그레이드 버전, QQE와 GPIF에 대해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원래 한개의 글로 올리려 했으나 분량 관계상 2개로 나눠 올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순서로 일본 중앙은행 구로다 총재의 기자회견 내용 위주로 살펴봅니다.
*BOJ의 깜짝 발표
10월의 마지막날이었던 지난주 금요일.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졌다. 일본중앙은행(이하 BOJ) 구로다 총재가 이날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적질적 금융완화 프로그램(이하 QQE) 개시를 전격 발표했던 것. 이는 기존에 시행되어 오던 일본판 양적완화 프로그램(QE)의 수준을 대폭 강화시킨 '업그레이드 버전'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그가 직접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BOJ 정책위원 투표결과 5:4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이번 QQE 프로그램 도입을 가결시킴.
-현재 일본 내부에서 통용되고 있는 근원 통화량을 80조엔으로 상향조정.(기존 목표치는 60조엔에서 70조엔으로 10조엔 증가시키는 거였음.)
-BOJ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의 평균 만기를 최소 1년에서 4년까지 늘리기로 결정. 원래 계획은 3년 이하의 평균 만기를 6~8년으로 늘리는 거였음. 하지만 이번에 이 수치를 7~10년으로 늘려잡음.
-ETF와 J-리츠(부동산 신탁상품)에 투자하는 액수를 3배로 늘리기로 결정. 따라서 1년 기준으로 ETF에는 3조엔을, 리츠에는 900억엔을 투자할 계획.
-기업지배권 강화와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니케이 추종 ETF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정.
-기업어음과 회사채에 대해서도 투자를 유지하기로 함.(각각 2조 2천억엔, 3조 2천억엔)
이런 내용이 발표되자 시장은 말 그대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일반인들은 물론 경제 전문가들까지도 BOJ가 이런 무지막지한 정책을 발표하리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발표의 여파로 일본 니케이 주가는 4.8% 폭등세를 기록, 7년래 최고점을 기록했다.(주: 비공식 소식통에는 이미 하루 전에 BOJ를 주목하라는 내용이 떠돌았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QQE의 위력! 장대양봉이 뜬 니케이 주가(녹색 화살표가 발표 당일)
분봉으로 바꿔보면 당시 발표의 위력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니케이 10월 31일 5분봉 차트)
아무튼 BOJ의 이번 발표로 세계경제를 이끄는 두개의 축-미국과 일본-은 다음과 같이 정반대 상황을 맞이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완전히 중단한 반면 일본은 이제서야 양적완화란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구로다 총재가 이런 깜짝 발표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 일본총리 아베 신조에 의해 BOJ의 수장자리에 오른 후 지금까지 '아베노믹스의 충실한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10월 31일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매우 부진하기 때문이다.
BOJ가 인플레이션 목표치(2%) 달성을 위해 발벗고 나선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아베 집권 이후 1년 반 동안 2% 인플레이션 달성을 위해 이미 두차례나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사람에 따라선 그냥 한번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웬걸.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되살아나기는 커녕 오히려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들어 이 수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것이다. 4월에 실시된 소비세 인상효과를 제거하고 본다면 이 같은 추세가 명확히 드러난다. 아래 그래프처럼 말이다.
일본 인플레이션 추이(파란선은 소비세 인상 효과 포함, 빨간선은 제외한 것)
10월 인플레이션(핵심) 수치는 단 1%를 기록 10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번 발표 이전까지 구로다 총재는 틈만 나면 인플레이션 목표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위 그래프가 말해주듯 정반대였다. 한마디로 시장 및 일본경제는 그의 발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는 뜻. 목표치 2%는 커녕 1%대도 유지하기 힘들어졌으니까 말이다.(9월과 10월 모두 1%를 기록했다.)
이렇게 되니 뻘쭘해지는 건 구로다 총재 자신이었다.(당연히 아베도 그랬을 것이다.) 계속 하락하기만 하는 물가상승률을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결국 해가 바뀌기 전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2편에서 살펴보겠지만 여기에는 일본 국내 정치적 상황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소식이 전해지자 외환시장도 즉각 반응을 보였다. 엔달러 환율이 2.2%나 폭등했던 것. 10월 31일 엔달러 종가는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레벨을 기록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엔화는 그때보다 더 하락하고 있다. 항상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필자의 정성이 드러나는 순간. 조금 냉정하게 굴었다면 10월 31일 종가까지만 보여드렸을 것이다.)
엔달러 환율 추이(녹색 화살표는 10월 31일)
지금의 위치를 장기적으로 비교해보면 어떨까? 현재는 2007년 말 레벨에까지 육박하는 상황이다.
엔달러 환율 추이 확대
시장이 이렇게 반응한 것에 대해 그 정도가 뭐가 대수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거 같다. 앞서 말했듯 BOJ가 이미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던 터라 이번 발표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래 내용을 읽는다면 반응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BOJ가 이번에 늘린 양적완화 증가폭은 10조엔,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100조원 정도 된다. 이는 미국 Fed가 QE 프로그램에 의존해 한창 자산매입에 열을 올리던 당시 1달 동안 풀었던 돈의 총액수와 비슷한 규모다.
-일본의 경제규모가 미국의 3분의 1도 안된다는 점을 떠올려 보시길.
-이번 발표에 따라 BOJ가 자산매입에 쏟아붓는 돈은 일본 전체 GDP의 17%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결론: BOJ가 갈데까지 갔다.
BOJ의 유탄을 맞은 건 주식, 환율시장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빈사상태에 빠져있던 금가격은 아예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백문이 불여일그. 그래프에 모든 게 드러난다.
국제 금가격(참고로 최근 금시장은 기술적 분석이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으니 '더 엄청난 놈'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로 치면 다크나이트에 이어 인셉션이 곧바로 개봉하는 경우라 하겠다.
*일본 공적연금. 너마저......
다크나이트와 인셉션. 영화팬이라면 잘 알겠지만 모두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사람이 감독을 맡은 영화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작품성과 흥행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이 감독을 BOJ 혹은 일본정부에 비유하자면 방금 위에서 설명했던 QQE는 다크나이트에, 이번에 설명하려는 공적연금(이하 GPIF)은 인셉션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은 '엄청나다'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QQE나 다크나이트나 모두 엄청나지 않은가?), 차이점은 '현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라는 것이다. 이 중에 후자, 즉 BOJ와 일본정부가 엄청난 자본을 들여 개시한 두 프로그램(QQE, GPIF)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 GPIF라는 게 대체 뭔가?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우리나라의 연기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세계 국부펀드 가운데 가장 돈이 많은 펀드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GPIF와 관련된 소식은 무엇이었을까? 이 펀드의 자산운용 방향이 대거 바뀐다는 발표가 그날 오후 나왔던 것이다. QQE 발표가 나온지 불과 몇시간도 안돼서 나온 제 2의 깜짝 소식이었다. 그리고 GPIF 관련 소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 주식과 해외 주식, 해외 채권 보유 비중을 2배 이상으로 늘리는 반면 일본 국채 비중은 대폭 줄인다."
자세한 수치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그다.
일본 공적연금(GPIF) 포트폴리오 비중 변화
위 수치만 보면 이번 결정이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사실이 있으니 바로 다음과 같다.
ㄱ. 이 펀드는 전 세계 국부펀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데 현재 자산이 우리 돈으로 무려 1,300조원에 이른다.(우리나라 연기금도 규모가 큰 편이다. 455조원 규모로 세계 2~3위권을 기록 중이다.)
ㄴ. 이 펀드의 포트폴리오가 단 1%만 변동돼도 13조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여러 자산시장에서 유입, 유출된다는 걸 뜻한다.
공룡이 살포시 숨한번 쉬어도 곁에 있는 동물들은 죄다 휩쓸려 날아가버린다. 하물며 이 펀드가 1%도 아닌 수십%의 리밸런싱을 감행한다면 그건 공룡이 재채기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 즉 일본 자신은 물론 전세계 자산시장에 지각변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뜻. 이로 인해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의 국채, 환율, 주식시장이 상당한 영향을 받는 건 매우 당연하다 하겠다.(구체적인 수급 및 자금동향은 기회가 되면 살펴보겠다.)
구로다 총재가 QQE정책을 발표한 바로 그날, 일본 정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들이 운영하는 공적연금 펀드의 일본주식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그래프에서 살펴봤듯 현행 12%를 25%로 늘린다는 것.)
사실 이번 GPIF 관련 발표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구로다의 발표에 비해선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 전부터 GPIF의 운용 방향을 대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는 우리나라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매번 제기되는 내용이다.)
가뜩이나 아베가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는 일본국채 일변도에서 벗어나 고수익, 위험추구형으로 자산운용 방향을 바꿀 것을 강요당해왔던 게 사실이다. 물론 아베가 이런 압력(?)을 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국 국민의 노령화 때문이었다.
GPIF와 관련해 그나마 놀랄 부분이 있었다면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주식 비중을 더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만해도 GPIF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포트폴리오 내 비중 변동이 있더라도 일본주식 비중은 최대 25%로, 일본 국채는 최저 40%로, 해외주식은 소폭 증가를 예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폭의 변동계획이 나오자 대다수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의 대범함(?)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 그렇다면 QQE와 맞물린 GPIF의 포트폴리오 비중 조정은 국제 자산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당연히 엄청난 쓰나미를 몰고올 것이다. 특히 일본내 기관 투자자들이 최근 수년동안 GPIF가 움직이는 방향을 그대로 추종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므로 전세계 시장 참여자들은 GPIF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예상된다.(일본의 경우 그 특수성으로 인해 기관들의 후행성이 유독 심하다. 이는 일본 시장 수급을 분석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일단 이번 발표 내용만 놓고보면 GPIF의 태도변화로 가장 수혜를 받는 쪽은 일본 주식시장이 분명해졌다. 이번 발표를 기폭제 삼아 일본내 신탁은행들은 당장 자국 주식에 달려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월별 주식 매수량인데 당장 지난달(10월) 이들이 매수한 일본 국내주식은 9월에 비해 무려 7배 가량 폭증했다.(액수 기준)
2014년 일본 신탁은행들의 일본 주식 매수액 추이(단위: 10억엔)
물론 혜택을 입는 건 일본 주식시장 뿐만이 아니다. 역시 기존보다 2배 가량 늘어나게 되는 해외 주식시장(12%->25%)도 분명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물론 해외 '어느 국가'에 돈이 유입되느냐는 분석해봐야 하는 문제다.)
반면 이렇게 혜택을 보는 쪽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쪽도 있는 법이다. GPIF의 자국 국채 보유비중을 35%로 대거 줄임에 따라 일본 국채시장은 다소 충격을 받게 됐다. GPIF는 이미 올해 3분기 중에 사상 최초로 자국 국채에 대한 비중을 50% 밑으로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수치는 이번 4분기에도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사항은 아래 보너스 상자 참조)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2편에선 QQE에 담겨져 있는 정치적 의미, 경제적 노림수, 민간 경제부문에 대해서 살펴볼 예정이다.
주의사항: 위에 나온 포트폴리오내 자산비중은 현재의 수치가 아니다. 할당된 비중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GPIF는 자국 주식의 비중을 12%에서 25%까지 늘리기로 했다고 적어놨다. 이 말은 현재 GPIF의 일본 주식 보유비중이 12%란 뜻이 아니다.(현재는 17%에 육박) 어디까지나 의무 할당 비중이라고 이해하시길.
*보너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바로 GPIF의 자국 국채 매도에 따른 시장충격 발생 여부다. 최근 몇년동안 자국 국채에 대한 비중을 60% 넘게 유지했던 GPIF이기에 앞으로 '시장에미치는 충격을 최소화 하면서 매도하는 게 무척 중요해졌다 하겠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GPIF는 최근 이 비중을 50% 이하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텐데 과연 시장에는 충격을 미치지 않았을까? 일단 아래 그래프를 보자.
일본 10년물
위 그래프에서 보듯 일본국채 금리는 계속 하락추세를 기록했다. 별다른 매도충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 그렇다면 GPIF의 매도와 맞물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은 아래와 같다.
GPIF가 대량매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BOJ 및 민간부문의 국채수요가 여전히 엄청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하겠다. 만약 이런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위 그래프의 형태는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앞으로 위 그래프의 향방을 주시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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