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대학 시절이 지난지도
15년이 되었다.
아무런 고민 없이 막걸리를 같이
먹었던 친구들은
연락되지 않는다.
먹고 산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 대한민국 자영업자에겐 한달에 소비하고 저축하는 것이 근로소득자보다 더 치열하다.
부모님이
넓은 세상을 경험하라고 떠났던
유학이라는 이름은
정말 넓은 세상만 보고
부모님에게 짐만 얹어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들처럼 토익공부와 공기업 시험을
같이 준비했지만,
중소 기업에 들어가서 영업관리하는
업무가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직위가 낮은 분들을 매번 상대하면서
성격만 나빠지고 있다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길들여져 간다고
친구들이 이야길했다.
회사를 위해서 새벽 5시에 눈을 떠
밤 12시 경 매번 눈을 감았다.
출장과 음주가무 , 애경사에 한번도
빠짐없이 나를 알리고 회사를 알렸다.
체력적으로 힘들어지고,
출장이 잦아지고, 먹는 것이 불편해지고
돈도 모아지지 않는 생활을 5년 정도 하였다.
나한테는 대리라는 직함이 주어졌지만,
주위 인간관계는 깊지 못하고 힘들어져만 갔다.
그리고 나에게도 결혼이라는 삶의 무덤이
시작되었다.
착한 부인은 도움이 되고자
지방의 백화점에 엑세사리 가계를 오픈하였다.
주말 부부였지만, 경제적인 희망을 꿈꾸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다시 합가하고,
부채가 늘어나고 일은 쌓여가고
행복하게 아이와 부인을 쳐다볼 시간이 줄어듬을 느꼈다.
갑자기..
지방에 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다.
모든 것이 허망한 듯 하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내 주위에 환경이
도와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머니 옆으로 왔다.
그래도...먹고 살아야 했다.
영업 관리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자영업에 뛰어 들었다.
언론에 나타난 암흑같은 숫자들을 뛰어 넘어
자신이 있었고, 가정이 안정되어서
잘 될 것으로 생각했다.
* 3년을 버티기가 힘들다는 자영업.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방의 유동인구는 없었고 경기는 좋지 못했다,
같이 오픈했던 옆 상가건물이 문을 닫았다.
나보다 5년 정도 후배인데, 배를 타러 간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이와 부인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먹고 살기 위한 경제적 희망은 갈수록 희미해져 가고 있다.
예전 직장 상사에게 술 한잔 하고 전화를 드렸다.
직장 상사의 한마디...“야 요즘 신입들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집에 가지 않고, 찜찔방에서 자고 출근하더라...“
젊음과 패기가 좋은 세상이다.
열정은 있지만..나에겐 용기가 없는건가..
전월 카드값이 나왔는데, 어떻게 할거냐고..
마누라에 전화가 걸려왔다..
소주 한잔을 다시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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