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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인권을 위하여..[2]
추천 0 | 조회 2424 | 번호 2579 | 2014.03.06 13:53 윤태환 (sesangj***)

몇 일 전 세 모녀의 죽음이 세상을 아프게 했다.

베르테르 효과처럼 생을 달리하는 기사들이 우울하게 만든 한주 였던 듯 하다. 

아프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며, 고통 없이 달콤함만 가진 인생이 몇이나 있을까.

 

조금 더 아픔과 고통을 이겨냈다면,

희망적인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여러 가지 메아리가 혼란을 가져온다.

 

자식의 숨을 끊는것보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돈을 남겨놓았다는 어머니의 마음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하지만,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떳떳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 어떠한 이유에서든 삶은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보살핌으로 알았던 적이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 또한 눈이 실명이 되고,

1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으러 다닌지도 20년 가까이된 장애인이다.

딸이 이 손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 착한 딸(?)과 어머니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보살핌(?)이 전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누나의 간섭(?)을 참지 못한 어머니는 자기 맘대로 하길 위해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 논다거나, 밥을 시도 때도 달라고 하면서 누나를 귀찮게 하며,

하루에도 몇 번 씩 아픈 발바닥과 어깨등을 주물러 달라고 손자들을 괴롭힌다.

전문적인 의료 기관에는 가지도 않을 꺼면서 이것 저것 해주지 않는다고

나에게 고자질(?)하는 경우의 이유들이다.

 

 

누나의 경우 어머니가 조금 더 보살핌을 받길 원한다.

전문적인 의료기관이나 요양 시설과 같은 좋은 시설에서

치료 받은 경우 가족의 생활을 확보할 수 있고,

본인도 건강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여전히 누나는 20년 동안 충실한 어머니의 몸종으로 살아오고 있다.

 

 

세상에는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살핌이 아닌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장애인의 경우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내 머리가 시키는 데로, 내 미각이 느끼는 데로 ,

내가 성취할 수 있는 만족감을 가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주거권이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장애인 분들을 볼 때마다

그 권리는 인정 받아야 된다고 생각되어 진다.

이들은 보살핌의 대상의 아닌 응원의 대상이다.

 

 

사연이 어찌되었든 노숙을 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있거나,

밥 한끼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지원은 직접적이고 바로 효과가 나타내어야 한다.

이것을 지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기초 생활 수급자 수를 늘려, 먹거리를 해결해야 한다면,

그 제도는 자활이 아닌 지원이 되어야 한다.

자활은 일정 정도의 근로 능력이 확보되고,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확보되어 있는 분들에게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응원해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존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산다.

물론 생존 앞에선 자존심은 돈이 되지 못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사람은 돕고 싶고,

내가 도움을 받았다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세 모녀의 어머니인 경우 집주인에게 최소한의 자존심과 도움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겐 사회의 응원 메시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자녀에겐 아마도 사회적 지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족 문제의 하나는 경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경제 문제는 가계 부채와 맞닿아 있다.

가계 부채는 나라에서 지원할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이겨내야 할 자활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자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로 통해서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인권이란 포기하지 않고 사회적인 자존심과 동등하게 삶을 이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저축을 포기하더라도, 금융기관들의 충직한 신하로써 대출을 상환해 가는 분들이

대한민국의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 가격과 금융 상품의 유희(?)로 이들을 아프게 하지 말고, 적정 부채내에서

생활하고, 내일을 살 수 있게끔 모든 경제 주체가 지원을 하고 응원하는

가계 부채 해결 제도가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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