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정보 VS 지나치는 정보
우리는 매일 인터넷, TV, 스마트 폰 등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숱한 자극을 받는다. 특히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내용을 접하게 되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듣게 된다.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날씨 뉴스에 민감하다. 기온, 바람세기, 비올 가능성 등 미리 일기 예보를 듣고 대비를 한다. 도시인들도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들으면 집을 나서기 전에 우산을 챙기는 것처럼 말이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영화 상영 날짜와 시간을 알아본 후 예매를 한다. 정보의 돌출성이란 다른 정보에 비해 두드러져 우리의 관심을 끌고 행동까지 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게 연관되어 있거나 내용이 충격적인 정보는 그 자체가 돌출적이지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정보들도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면 돌출적으로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정보의 돌출화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더 나아가 행동까지 바꾸게 만드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관심 끌기엔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정보
평소 많은 관심이 있거나 충격적인 사건들도 곧 잊혀지기 마련인데, 하물며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금융정보라면 관심이 생기긴 커녕 오히려 심리적인 부담감만 생겨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펀드에 가입하는 사람들 중 약관이나 투자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는 응답자는 26.0%에 불과했다. 읽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양이 너무 많고 귀찮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금융정보 가운데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금융상품의 수익률이다.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1,875명에게 가입한 펀드의 정보 확인 빈도를 물어본 결과, 투자자들이 수익률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의 자산 구성내역이나, 펀드매니저 변동의 확인 빈도는 낮지만, ‘투자 성과’에 대한 정보는 무려 61.8%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대부분 금융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여러 가지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라는 조언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다른 정보 보다 과거 수익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과거 수익률을 참고는 해야지만, 그것이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주의 문구까지 읽은 사람들도 과거 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 결국 투자의 위험이나 투자비용은 가볍게 여겨 본인에게 적합하지 않는 상품에 투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들이 좀 더 나은 금융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다른 중요한 금융 정보도 지나치지 않고 주목하도록 만들 방법은 없는가?
선택대안 축소를 통한 정보 돌출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이야기이다. 처음 방문하는 음식점에서 메뉴판을 열어본 순간, 음식 가지 수가 너무 많아서 고르는 걸 포기하고 직원에게 가장 인기 좋은 음식을 가져다 달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음식점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펀드나 보험 등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이 어려워 결국 판매직원이 권유한 상품에 가입해버린다. 현재 가입 가능한 공모펀드가 무려 3,215개나 되니 스스로 선택하기를 포기해 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소비자에게 다양한 금융상품을 제공한다는 것은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선택 폭이 지나치게 넓어지면 정보가 돌출되지 않고 희석되어 소비자가 선택을 포기한다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이러한 점은 심리학 실험결과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Iyengar(컬럼비아 경영대학원)와 Leppar(스탠포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실시한 ‘잼 실험’을 보면, 선택대안이 늘어날수록 선택을 포기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6종류 또는 24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회 부스를 설치한 다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식을 하는지 살펴보았는데, 24종류 잼이 진열되어 있던 곳에서는 지나가던 사람의 60%가 멈췄고 6종류 잼이 진열되어 있던 곳에서는 40%만 멈추었다. 그러나 24종류의 잼이 진열되어 있던 곳에서는 단지 3%만이 구입을 한 반면 6가지 잼이 있던 곳에서는 30%가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결과에 대한 일부 이견도 있으나, 너무나 많은 정보량은 결정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대표적인 실험이다. 정보를 돌출시키기 위해 선택대안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정보는 돌출시켜야..
핸드폰 서비스에 가입할 때 우리는 몇 장씩이나 되는 가입서류에 서명을 한다.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글씨도 너무 작다보니 읽을 마음도 생기지 않아 결국 판매직원이 눈에 확 띄는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에 몇 초 만에 서명을 한다. 즉, 형광펜으로 돌출된 부분이 주목되면서 그 부분의 정보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의 어머니가 핸드폰 대리점에서 핸드폰을 고른 후 판매직원이 형광펜으로 표시해 준 곳에 서명을 하고 계셨는데, 필자가 가서 살펴보니 굳이 서명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도 서명을 하신 적이 있었다. 마케팅 활용을 위한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부분은 필수 동의 사항이 아니므로 굳이 서명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괄호에 동의하지 않아도 가입에 지장이 없다는 문구가 너무 작게 써져 있고, 서류에 있는 글씨들이 너무 많아서 지나쳐버리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따로 판매직원의 설명도 없었다. 금융상품 가입 시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판매직원이 형광색으로 표시한 부분만 보고 서명을 하게 된다. 이처럼 어떤 정보를 돌출시켰냐에 따라 금융 행동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마케팅 활용을 위한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부분에 굳이 서명할 필요가 없다는 글씨를 큼지막하게 써놓고 형광펜으로 표시해 둔다면 평소 불필요한 마케팅 전화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표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보가 돌출될 수도 있고 무시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펀드에 투자할 때 수수료가 1% 정도라는 설명을 듣는다면 무시하고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 기대하는 수익률에 비해서 1%는 그리 높은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작아 보이는 비용이라도 장기적으로는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로 표시된 숫자보다는 금액으로 표시된 숫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즉, 수수료 1%가 아니라 1억원을 투자하면 백만원이 수수료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늠하기 어려운 숫자가 아니라 그림이나 그래프 또는 명확한 금액을 제시하는 것이 정보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다. Brown(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캠퍼스) 교수 등이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연금상품을 어떻게 설명하냐에 따라서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대다수의 응답자들이 소비를 기준으로 질문을 하면 연금상품을 선호했으나, 투자위험과 실적 기준으로 질문을 하면 연금 형태 이외의 상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돌출시킬지, 정보를 돌출시킬 때 어떤 표현 방식을 사용해야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보를 돌출시키도록 하는 정부 정책이 필요
최근 체크카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명 하이브리드 카드라는 신종 카드가 출시되었다. 이것은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기능을 섞어 놓은 카드로, 체크카드의 잔고가 부족할 때는 신용으로 결제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카드이다. 금융회사는 체크카드의 잔고가 부족할 때 결제가 되지 않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이러한 상품을 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은 하이브리드 체크카드의 장점만 강조하고 다른 중요한 정보는 돌출시키지 않아 결국 고객들이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한 대학생이 하이브리드 카드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20만원을 결제했는데, 당시 통장에는 잔고가 15만원뿐이었지만 차액 5만원만 소액 신용결제될 거라는 생각에 별다른 부담 없이 구매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으로 날라 온 카드 고지서를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잔고는 그대로 있고 20만원 모두 신용결제 됐기 때문이다. 카드사에 문의한 결과 차액만 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금액이 신용결제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대학생은 이러한 설명을 판매직원에게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금융감독원에서 현재 일부 카드사에서 시행중인 체크카드 사용액 문자(SMS)알림에 예금 잔액을 포함하는 서비스를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발표했다.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통장 잔고라는 중요한 정보를 돌출시키는 것이다. 또한 하이브리드 카드 사용에 대한 홍보 강화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아마 금융회사들은 통장 잔고를 뺀 나머지 금액만 신용결제 되는 것보다 전체 금액이 신용결제 되는 것이 이익이 될 것이다. 대개 금융회사들은 고객입장에서는 중요하지만 알게 되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까봐 돌출을 꺼리는 정보가 있다. 따라서 고객한테 중요한 금융정보를 금융회사가 고객들에게 꾸준히 알리도록 감독당국의 규제가 필요하다.
정보의 돌출성은 바람직한 금융행동을 유도하는데,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문자 메시지 등 정보 돌출을 통해 예산 내에서 지출하기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겠지만, 금융상품을 선택해야 할 경우,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보 돌출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만약 중요한 정보를 모두 돌출시킨다면, 돌출되지 않은 상태와 똑같이 될 것이다. 책의 모든 단어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정보의 돌출도 중요하지만, 금융상품 선택 등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가 너무 많을 경우, 모든 중요한 정보를 소비자의 입장에서 성실히 검토하고 조언해 주는 전문적인 금융멘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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